책소개
≪취옹담록≫은 송대에 출현한 소설 형식인 ‘화본(話本)’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서적으로서, 당시의 직업적 이야기꾼들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는 문헌이다. 이 책에는 주로 당송(唐宋) 시기에 유행했던 전기(傳奇)소설 가운데 일부분 혹은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실려 있으며, 그 밖에 약간의 시와 사(詞) 그리고 콩트와 비슷한 잡다한 글들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 송대의 설화나 화본, 희곡 및 기타 통속문학 자료와 관련된 작품들은 특히 중국 고전소설 연구자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제1권에 실려 있는 <소설인자>와 <소설개벽> 두 편의 글에는 당시 이야기꾼들이 갖추어야 할 지식과 기술 등이 아주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아울러 당시에 유행하던 이야기들을 영괴(靈怪)·연분(煙粉)·전기(傳奇)·공안(公案)·박도(朴刀)·간봉(杆棒)·신선(神仙)·요술(妖術) 등 여덟 종류로 분류하고, 각 종류별로 대표되는 작품들을 나열해 모두 100여 가지가 넘는 작품을 기록해 놓았다. 즉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중국 소설사에서 일대 전환점이 되는 송대의 소설 환경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찾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취옹담록≫이 소설 사료로서 지니는 절대적인 가치는 <소설개벽>에 담긴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나엽이 여기에 정리해 놓은 작품들은 송대 사람들이 당시에 소설을 얼마나 즐겼는지를 알려 주며, 훗날 소설의 가치와 지위를 제고하는 데 관건이 되는 역할을 했다는 방증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둘째, 송대에 들어와서 ≪취옹담록≫과 같이 전문적인 이야기꾼이나 소설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과도기적 형태를 띤 소설집의 출현은 중국 소설이 문언소설(文言小說)의 전통적 울타리를 벗어나기 시작해 후대의 백화소설로 발전하는 토양을 제공했다. 문언소설은 그 독자가 주로 식자층으로 한정되어 있으나, 이 책은 이야기꾼이 일반 대중을 청중으로 삼아 풀어내기 편리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이러한 과도기적 형태를 거쳐서 명대에 들어서면 청중보다는 독자를 대상으로 정리한 화본소설집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중국 고전소설의 발전 단계에서 중심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뼈대라고 할 수 있겠다.
셋째, 이른바 중국의 ‘사대기서’라 불리는 소설의 태동과 관련된 중요성을 들 수 있겠다. <소설개벽>에 나열된 작품 가운데는 ≪수호전≫에 등장하는 인물인 <청면수(靑面獸)>·<화화상(花和尙)>·<무행자(武行者)> 등의 이름이 단일 제목으로 제시되어 있고, ≪삼국지≫의 중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제갈량’이란 이름도 나온다. 또한 ≪서유기≫의 저본(底本)이라 할 수 있는 ≪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經詩話)≫도 송대에 나온 것인데, 이로부터 명대에 출현한 소설 대작들의 원시 형태는 이미 송대에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설개벽>에 열거된 <홍지주(紅蜘蛛)>라는 작품은 송대의 다른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인데, 1979년 시안(西安)에서 원나라 판본인 <신편홍백지주소설(新編紅白蜘蛛小說)>이라는 제목을 단 책의 일부가 손상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 문헌은 중국 소설 학계에서 “20세기 소설 자료상의 중대한 발견”이라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홍백지주’에 관한 이야기는 명말 풍몽룡이 편찬한 ≪성세항언(醒世恒言)≫ 31권 <정절사입공신비궁(鄭節使立功神臂弓)> 이야기의 전신인데, 중국 송원 소설의 전문 연구자인 청이중(程毅中)이란 학자는 ≪송원 소설 연구(宋元小說硏究)≫라는 저서에서 송원 시기에 화본 정리를 담당했던 ‘서회선생(書會先生)’들이 전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보고 있는데, 그 근거는 바로 ≪취옹담록≫에 그 제목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처럼 ≪취옹담록≫은 다른 소설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기록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소설사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문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200자평
수호전, 삼국지, 서유기, 금병매, 중국 4대 기서의 모태가 된 책. 송나라 이야기꾼들의 필독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소설을 논하지 말라. 연애 소설, 추리 소설, 콩트, 판타지… <아내의 유혹> 같은 막장 소설까지, 이 책 한 권에 모두 들어 있다.
이 책에는 주로 당송(唐宋) 시기에 유행했던 전기(傳奇)소설 가운데 일부분 혹은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실려 있으며, 그 밖에 약간의 시와 사(詞) 그리고 콩트와 비슷한 잡다한 글들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 송대의 설화나 화본, 희곡 및 기타 통속문학 자료와 관련된 작품들은 특히 중국 고전소설 연구자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엮은이
≪취옹담록≫의 편찬자로 알려진 나엽의 생평에 대해서는 현재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제1권 갑집(甲集)의 표제어 아래에 보이는 ‘여릉 나엽 편(廬陵羅燁編)’이라는 기록을 통해 그가 지금의 장시성(江西省) 지안(吉安) 사람이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된 내용과 어투를 볼 때, 나엽이 주로 활동했던 시기는 송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취옹’이라는 두 글자는 원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잘 알려진 구양수(歐陽脩)의 호인데, 구양수 또한 북송 시기 여릉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나엽이 책 제목을 정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남송 시기에 중국 전설상의 역사적인 일들로부터 풍속과 지리 등을 논술한 ≪노사(路史)≫ 47권을 편찬했던 나필(羅泌)과 고향이 동일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즉 여릉 지방에는 나씨(羅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데, 나엽은 비록 관직에 오르지 못해 정사(正史)를 비롯한 다른 문헌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집안 분위기와 주위 환경으로 인해 상당한 학식을 갖추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당시 중국의 상층 문인들이 소설을 경시하는 풍조 속에서 나엽처럼 ≪취옹담록≫과 같은 통속적인 내용의 책을 자신의 이름을 걸고 편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서의 서문에 해당하는 <소설인자>와 <소설개벽> 두 편의 글에서는 당시 소설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학식과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 도드라져 보인다.
옮긴이
이시찬(李時燦)은 중국 고전소설을 전공했다. 성균관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뒤 타이완 국립정치대학교에서 <취옹담록 연구(醉翁談錄硏究)>(2002)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베이징대학교에서 <송원 소설가 화본 문헌 전승 연구(宋元小說家話本文獻傳承硏究)>(2007)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사상과 문화로 읽는 동아시아≫(공저,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9)와 ≪고대소설 관련 논문 목록≫(공저, 학고방, 2009)이 있으며, 그 외에 <명(明) 만력(萬曆) 시기소설 선집의출현과형식적특징>을 비롯한 10여 편의 연구 논문이 있다. 중국 역사상 각 시기의 문화적 배경과 해당 시기에 출현한 소설의 특징 및 관련성을 연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중국 문학을 토대로 인문학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방법론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BK21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차례
해설 ·······················7
엮은이에 대해 ··················15
소설인자(小說引子) ···············19
소설개벽(小說開闢) ···············26
사랑의 쟁취를 위한 젊은 남녀의 야반도주(張氏夜奔呂星哥) ·······················36
정녀와 진언신의 몰래 한 사랑(靜女私通陳彦臣) ···52
이어지는 판관 왕강중의 판결(憲臺王剛中花判) ···58
당나라 궁녀가 옷에 수놓은 시와의 인연(唐宮人製短袍詩) ························61
부부가 주고받은 애정 편지(王氏詩回吳上舍) ····63
출세하고서도 약혼녀를 바꾸지 않은 황계중(黃季仲不挾貴以易娶) ·····················65
양성(兩性)을 지닌 몸종(致妾不可不察) ·······70
모기가 호색한인 이유(嘲人好色) ··········73
눈썹이 존재하는 이유(嘲人不識羞) ·········75
못 말리는 술고래 남편(嘲人請酒不醉) ·······76
청동군을 아내로 맞이한 조욱(趙旭得靑童君爲妻) ··77
운용을 아내로 맞이한 설소(薛昭娶雲容爲妻) ····86
직녀를 아내로 맞이한 곽한(郭翰感織女爲妻) ····91
선녀의 당부를 따르지 않은 봉척(封陟不從仙妹命) ··98
동정호에서 용왕의 딸을 만난 유의(柳毅傳書遇洞庭水仙女) ······················104
천태산에서 선녀를 만난 두 남자(劉阮遇仙女于天台山) ·······················115
남교에서 운영을 만난 배항(裴航遇雲英于藍橋) ··118
배신한 애인 왕괴에게 복수한 계영(王魁負心桂英死報) ·······················125
붉은 비단 손수건에 얽힌 약속과 배신(紅綃密約張生負李氏娘) ·····················137
무쌍과 왕선객의 행복한 결말(無雙王仙客終諧) ··157
정생을 배신하지 않은 이와(李亞仙不負鄭元和) ··164
옮긴이에 대해 ··················172
책속으로
●[소설은] 나라의 역적과 간신배와 방종하고 아첨하는 무리를 이야기해 어리석은 백성들을 분노하게 하고, 충신의 억울한 원한을 이야기해 무쇠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귀신과 괴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도를 닦은 사람이라도 간담이 서늘해지고, 여인네들의 원한에 대해 이야기하면 재자가인(才子佳人)들도 슬픔과 우수에 잠긴다.
뛰어난 영웅들이 서로 다투는 이야기를 하면 도를 닦은 사람이라도 통쾌한 기분을 느끼며, 군대가 진을 치고 싸우는 이야기를 하면 용감한 사나이가 웅대한 뜻을 품게 된다. 여몽정(呂蒙正)이 청운의 꿈을 실현하는 이야기를 하면 재주 많은 선비들은 많은 책에 관심을 갖게 되고, 석가모니가 쌍림에서 대낮에 하늘로 올라간 이야기를 하면 숨어서 도를 수련하는 은자들이 초심대로 도리를 공부하게 된다. 입신출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미천한 집안의 사람도 분발하게 되고, 의리를 저버리고 배신한 이야기를 하면 간사한 사내가 부끄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삼산(三山)의 오구(吳口)는 자(字)가 인숙(仁叔)이었다. 태학(太學)에서 공부할 때 집에 편지를 보냈는데 실수로 그만 백지 한 장만 보내고 말았다. 아내가 편지를 개봉해서 보고서는 미소를 띠며 즉시 시 한 수를 써서 보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녹색의 비단 창가에서 편지를 열어 보았더니
편지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깨끗하게 비어 있네요.
당신께서 이별의 회한이 너무도 간절해
저를 생각하심이 무언(無言) 가운데 있다는 걸 알겠어요.
인숙이 그 시를 받아 보고 또한 크게 웃었다. 그리고 역시 시 한 수를 보냈다.
빈 편지지 한 장을 보고 그 뜻을 헤아리다니
당신은 정말로 말로 표현하는 데 뛰어납니다.
만약에 성군(聖君)께서 과거로 사람을 뽑으신다면
마땅히 당신이 여자 장원이 되겠습니다.
●눈썹, 눈, 코, 입, 이 네 가지에는 모두 신령함이 깃들어 있다. 하루는 입이 코에게 말했다. ‘자네는 무슨 능력이 있기에 나보다 위에 있는가?’ 코가 말했다. ‘내가 좋은 냄새와 악취를 구별한 후에야 자네가 비로소 먹을 수 있으니까 내가 자네보다 위에 있네.’ 이번에는 코가 눈에게 말했다. ‘자네는 무슨 능력이 있기에 나보다 위에 있는가?’ 눈이 말했다. ‘내가 아름답고 추한 것을 관찰하고 방향을 살피는 데 그 공이 적지 않으니 마땅히 자네 위에 있네.’ 그러자 코가 또 말했다. ‘그렇다면 눈썹은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기에 또 나보다 위에 있단 말인가?’ 눈썹이 말했다. ‘나 역시 그대들과 이런 일로 논쟁하는 이유를 모르겠네. 내가 만약 눈 밑이나 코 아래에 있다면 자네가 얼굴을 어디다 둘 것인지 모르겠네.’